자 투어를 시작해볼까? 

시작해볼까
즐거운 발걸음

노래가 나와요

그냥 멋있어서 찍어봄

 

베를린 시티투어는 마이리얼트립에서 예약했다. 시티투어 시작 장소인 소니센터 (지금은 소니가 없다는데) 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소니센터 분수대 앞에 있는 Corroboree 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호주 레스토랑이었는데 캥거루 고기가 메뉴에 있는데 안 판다네. 그래서 그냥 치킨 랩과 치킨 샐러드. 어제에 이어 오늘 치킨도 완전 맛있었다. 독일 닭이 맛있는건가. (40.90EUR, 비싸다.. 남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아깝다) 나중에 가이드님 설명을 들으니 이 옆에 식당이 맥주랑 학센 맛집이라고... 

 

망고주스 브이
먹방 많이 본 아빠한테 배웠나
오랜만에 한컷
배고프다구요 사진 좀 그만찍고 먹자구

https://www.myrealtrip.com/offers/57638

 

베를린 필수 코스! 역사적 명소를 따라 꼭 알아야 할 도시 이야기

"검증된 설명, 통일과 화합의 시대로 나아간 베를린의 역사 이야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명소들을 둘러봅니다." [前유로자전거나라 독일지점]

www.myrealtrip.com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 소니센터 안에서 만나요. (소니센터의 아이맥스(IMAX)영화관 입구 앞)
오늘 하루를 책임질 든든한 캡틴(가이드)과 함께 여행이 시작됩니다. 이 곳 포츠다머 플라츠는 베를린이 과거 분단의 도시에서 중부 유럽 최대 도시로 꿈틀거리며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예요. 오랜 세월 동안 도시의 관문이자 교통의 중심지였고, 오늘날에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럭셔리 호텔, 쇼핑 센터가 자리잡은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해요.

 

점심을 먹고 12시 30분에 분수대에서 가이드님과 투어 일행을 만나고 우선 소니센터 지하2층 화장실로 고고. (유럽은 무료 화장실이 거의 없어서 투어중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화장실을 들렀다) 화장실만을 위하여 들린줄 알았는데 화장실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베를린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번 여행 준비중에 베를린이 동독 한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와 되게 무식) 베를린이 나눠지게 된 배경 이야기도 듣고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야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야기까지 다 듣고나니 베를린이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미리 공부하고 왔을 내용을 무지한 상태로 들으니 더 재미있었다. 베를린 배경 설명을 들은 후 1층으로 올라와 소니센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일본의 투자를 받아 후지산의 모습을 본따 만든 소니센터는 지금은 소니도 철수하고 소니 스토어도 철수해 소니와는 전혀 상관 없는 건물이며 과거에 우리나라 국민연금에서 이 빌딩을 소유했던 적도 있다고.  소니 센터 구경을 마치고 포츠다머 플라츠에 있는 베를린 장벽의 한 조각을 구경했다. 조각 아래에 Berliner Mauer 라고 적힌 선이 있으면 원래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고 그것이 없다면 조각을 가져다가 놓은 것이라고. 여긴 Berliner Mauer라는 선 위에 베를린 장벽 조각이 있어서 원래 장벽이 있던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벽 면에는 조약돌 같은 모양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씹던 껌을 붙인거라며... 윽 왜 껌을 붙이는지 알 수 없지만 절대 만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길을 떠났다. 이동하는 길에 어린이가 어제 몰 오브 베를린에서 본 베를린 장벽 조각은 실제 그 자리에 있었던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가지고 온 것인지 가이드님께 질문했다. 질문하는 어린이 아주 멋져. 다음 목적지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소니센터 내부
포츠다머 플라츠 앞 베를린 장벽 조각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2711개의 콘크리트 조형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당한 600만여 명의 유대인들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나치와 폭력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인류의 노력을 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을 나눌 수 있을까요?입장이 가능한 대부분의 경우, 박물관 내부 입장합니다.(무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구글맵에서 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항공 영상이 너무 멋있어서 캡쳐해봄. 실제로 앞에서 봤을때나 안에 들어갔을때는 이렇게 생겼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진짜 웅장하고 경건해지네. 홀로코스트라는 단어만 들어봤지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가이드님의 설명과 박물관 내부의 자료들로 홀로코스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나치의 극악무도한 만행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 독재가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어린이도 열심히 듣고 보고 했는데 얼마나 기억을 할런지 모르겠다. 홀로코스트 안에서 걸을때의 느낌과 박물관에서 본 희생된 어린 아이들의 사진만이라도 기억하자. 구조물 위에 앉아도 된다는 사실에 놀랬다. 경건하게 생각해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가깝게 느끼라는 의미인 것 같다. 넘실대는 깊은 바다의 파도처럼 바닥과 구조물이 어우러져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독일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많이 와 있었는데 독일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교육한다고 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스캔들도 들었는데 구조물에 바르는 화학물질을 공급하는 기업이 전범기업의 자회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독일 전체가 발칵 뒤집혀 몇 년동안 공사가 멈춰 있기도 했단다. 전범 기업이 오히려 더 잘 나가고 역사를 숨기기 급급한 일본과는 전혀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독일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박물관 안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편지와 사진 등을 보고 어렸을 때 울면서 읽었던 안네의 일기가 기억났다. 박물관 마지막에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이렇게나 미워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반목 때문이고 이는 한두세기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부터라서 비기독교인인 우리는 이해가 어려웠다. 서로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적이었을까. 이렇게 홀로코스트 구경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는 개선문 브란덴부르크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항공 영상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항공영상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수학여행 온 독일 친구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방문한 어린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안에서 하늘 바라보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하늘과 나무가 예쁘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사이를 걸어보자

박물관 안에서 열심히 설명 듣는 어린이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 통일의 상징, 베를린의 랜드마크에선 멋진 사진을 남겨야겠죠? 18세기 후반 독일엔 옛 그리스 신전에서 차용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어요. 그 중 브란텐부르크문은 슈프레 강의 아테네를 꿈꾸었던 최고의 고전주의 건축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약 10만 명의 인파가 이 곳에 모였고 지금도 매년 통일의 날이 되면 불꽃놀이가 성대한 곳입니다.

 

브란덴부르크문에 도착해서 문 측면에 마르스를 만나고 광장으로 들어갔다. 화창한 날씨에 사진 팍팍. 이곳에서도 많은 설명을 해주셨던것 같은데 이때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졌나보다. 기억이 잘 안난다. 그냥 멋진 문 구경. 길 건너편에는 천사의 탑도 있었는데 천사의 탑은 국회의사당 앞에 있던 걸 히틀러가 옮겼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사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 다음 장소는 바로 우리가 다녀온 국회의사당. 

 

힙한데
힙한 뒷모습
가이드님이 찍어주신 사진

 

 

국회의사당 Reichstag
분데스탁, 라이히스탁, 국회의사당... 독일어 참 어렵죠?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이야기부터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철골 유리 돔이 올려지기까지, 어쩌면 이 건축의 역사에 베를린의 역사가 모두 담긴 듯 합니다.(내부 입장하지 않습니다.) 이제 100번 버스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 볼까요?

 

국회의사당은 지난번에 다녀와서 그런지 더욱 반가웠다. 그런데 비오던 날과는 다르게 오늘은 잔디밭에 사람들이 앉아있기까지 하네. 그날은 무슨 일이었지? 국회의사당 공사 펜스 앞에서 히틀러에 대항하여 젊은 청년이 불을 질러 몽땅 태워버린 이야기도 듣고 소련이 독일을 점령했을 때 선전용으로 찍은 사진 등도 구경했다. 국회의사당 돔 방문 외에도 가이드 투어를 하면 국회의사당 내부도 다 볼 수 있다고 추천해주고 돔은 야경이 아름다워서 다음에 들어간다면 야경을 볼 수 있는 시간에 가겠노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도 수학여행 온 독일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 버스를 타고 훔볼트 대학교로 출발. 

 

국회의사당

 

 

훔볼트 대학교(외관)
훔볼트 대학교 법대 건물은 과거 프로이센의 왕립 도서관이었습니다. 맞은 편엔 국립오페라 극장이 있어요.역사적인 대로 '운터덴린덴'에는 의미로 볼 때나 기능적으로 볼 때 중요한 건물들이 즐비해요..

 

국회의사당에서 길을 건너 버스를 타기 전에 BVG 일일권 구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서 훔볼트 대학에서 내렸다. 대학 내부에 들어가서 대학 설명을 들은 다음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사먹고 가이드님이 주신 젤리와 과자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어린이가 있어서 많이 배려해주신듯. 

 

훔볼트 대학

 

 

베벨 광장
지하에 설치된 텅빈 책장은 예술가 미하 울만이 제작했습니다. 1933년 5월 10일에 이 광장에서 25,000권의 책이 불태워졌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이죠. 하이네, 카프카,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브레히트,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불태운 이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훔볼트 대학 건너편에 베벨 광장이 있는데 이곳은 진시황의 분서갱유처럼 나치 초기에 대학생들이 책을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설치미술이 지하에 있었다. 그냥 지나가면 전혀 알 수 없었을텐데 역시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니 알 수 없을만한 것들도 이야기해주어서 그 만족도는 정말 높다. 여기에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희곡의 한 대사가 적혀있다고 한다. "책을 불사르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면 결국 인간까지 불태우게 될 것이다." 이 말이 무슨 예언처럼 책을 불살랐던 나치는 후에 사람들도 불태웠다. 이렇게 독일의 역사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베벨 광장
베벨 광장에서 춤을
미하 울만의 텅빈 도서관

 

 

노이에바헤: 케테 콜비츠의 조각 작품
케테 콜비츠가 뜨거운 가슴으로 조각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 건물은 과거 프로이센의 왕실 경비대를 위한 초소로 쓰였습니다. 베를린 역사상 가장 중요한 건축가 중 한 명인 프리드리히 싱켈이 설계했지요.

 

베를린의 중요한 여성 예술가인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라는 작품이 설치된 건물 노이에 바헤도 방문했는데 케테 콜비츠는 아들을 1차 세계 대전에서 손자를 2차 세계 대전에서 잃었는데 그 슬픔을 조각한 것이 바로 이 피에타. 노이에 바헤 천장에는 구멍이 나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온 몸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처럼 느껴지고 눈이 오는 날에는 그 눈이 오롯이 다 쌓여 그 슬픔이 극대화된다고 한다. 보는 동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을 그 무엇에 비하겠는가. 그렇게 감동적인 작품을 보고 젠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으로 이동. 

 

케테 콜비츠
잠깐 앉아서 휴식
노이에 바헤에 있는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작품

 

젠다르멘 마르크트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곳이에요. 독일 돔과 프랑스 돔이 마주보고 있는 광장과 콘서트홀의 조화가 멋지거든요. 특히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마켓이 펼쳐집니다.

 

젠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에는 두 개의 쌍둥이 같은 돔이 있는데 하나는 독일 돔이고 또 하나는 프랑스 돔이다. 프랑스 개신교도들이 건설한 교회인 프랑스 돔. 독일 신교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교회, 독일 돔.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같은 콘체르트 하우스. 그 앞에 맥주집. 크 맛있겠다. 여기서 우리가 길을 건너는데 어떤 차가 좌회전을 하려고 하다가 우리가 건너니 경적을 울리더라. 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잘 멈춰주고 경적은 절대 안 울린다고 하는데 가이드님이 분명 저 사람은 이민온 사람일거라고 얘기 하면서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여자 비명 소리가 꺅. 뒤돌아보니 우리에게 경적을 울린 그 차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떤 여자를 차로 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다 모여들고 구급차 부르더니 몇 분 안되서 구급차랑 경찰이 몇 대가 옴. 여긴 참 사고가 없는 곳인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 

 

 

체크포인트 찰리
독일 1945 패전, 분단, 1989 베를린 장벽 붕괴, 1990 통일한국 1945년 해방, 1950년 전쟁과 분단...이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우리에겐 어떤 날이 올 수 있을까요?성공적인 통일과 화합의 역사를 연 독일을 배워봅니다.

 

젠다르멘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 그 유명한 체크포인트 찰리로. 찰리는 체크포인트 C의 찰리라고. 걸어가면서 본 미국 군인의 이름이 마치 찰리일 것만 같은 ㅎㅎ 미국 군인은 자신의 사진이 저 곳에 걸릴거란 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저 사진을 경계로 여길 넘어가면 미국땅이다 라는 의미 사진. 그리고 반대편엔 소련 군인의 사진이 있는데 여길 넘어가면 소련 땅이다 라는 의미라고. 그리고 일부러 미국 쪽 땅에만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맥도날드나 KFC가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냉전시대에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미국 외교관이 검문을 거부하다가 탱크까지 동원되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뻔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길을 걷다보면 바닥에 네모난 금색 명패 같은 것이 보이는데 그 집에 살고 있던 희생된 유대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인들의 잘못을 계속 드러내는 독일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러한 반성을 지나치다고 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 일반 국민들한테 이해받는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티투어를 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 같은 체크포인트 찰리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러 이동. 

 

이 뒤는 미국 구역 입니다
이 뒤는 소련 구역입니다 (You are leaving the American Sector)
검문소에서 찰칵
You are leaving the American Sector.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
유대인 추모 명패

 

버스200번을 타고 우리 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카이저 빌헬름 기억 교회로 향합니다.
여유롭게 운행되는 버스에 앉아 베를린의 자존심인 필하모니와 문화의집-전승기념탑-한국대사관 등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각 장소가 간직한 이야기들도 캡틴을 통해 들어보세요.

카이저 빌헬름 기억 교회와 얽힌 베를린 이야기
교회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푸른 빛에 압도 당하게 되고 이내 마음이 차분해져요. 1961년 건축된 신교회인데 그 어느교회에서도 볼수없는 독특한 건축형태를 지녔어요. 분단기엔 서독의 중심지로 가장 화려했던 곳, 그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이곳에 위치한 신교회 옆 구교회의 첨탑은 왜 부서진 채 남겨져 있을까요?[스탈린그라드의 마돈나(성모), 전쟁포로와 그들의 이야기]적군(당시 소련)의 지도 뒷면에 숯으로 투박하게 그려진 이 그림은 목사이자 군의관이었던 Kurt Reuber의 작품입니다. 영하30도를 웃내리는 견딜 수 없는 겨울 추위의 스탈린그라드. 그곳 지하벙커 벽에 걸렸던 이 그림 앞에서 젊은 독일 병사들은 어떠한 기도를 했을까요? 전쟁포로로 끌려갔던 90,000여명중 6,000명 남짓 만이 살아돌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려요.

 

버스를 타고 드디어 마지막 장소이자 베를린에서 보물찾기 사건 발생 장소인 카이저 빌헬름 교회에 도착! 여기선 일정을 마친 아빠와 드디어 재회.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전쟁 중에 파괴되었는데 그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그 모습을 유지하고 그 옆에 새로운 교회를 지었다고. 교회 내부 스테인드글래스가 매우 아름답다고 하는데 문을 닫은 시간이어서 내부는 보지 못했다. 교회 앞에서 가이드님 남편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가 전쟁포로로 끌려갔었다가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가이드님이 소련 군인들 욕을 하니 독일이 먼저 시작한 전쟁이라고 이야기하는 독일 남편의 말을 듣고 놀랐다는.. 이렇게 어렸을 때 교육이 중요한 법. 예상 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투어가 끝났다. 열정적인 가이드님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카이저 빌헬름 교회
카이저 빌헬름 교회
카이저 빌헬름 교회

 

 

투어가 끝나고 가이드님이 맛집 몇 군데를 소개해주셨는데 그 중 슈니첼을 먹으러 버스 타고 고고. 투어 일행 중 한명이랑 같이 갔는데 어린이가 또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잠든 어린이를 업고 식당을 가서 투어 같이 한 분이 먼저 들어가고 3명이라고 하니 자리가 없다고 미안하다고... 하아... 예약을 할것을. 다시 걸어서 젠다르멘 마르크트에 학센 집을 갔더니 거기도 만석, 그 옆 가게도 만석, 그 옆 가게도 만석.. 이노트랜스 때문에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남편말.. 그래서 결국 옆에 있는 마레도 라는 스테이크 집에 들어가서 스테이크와 슈니첼을 시켰는데 (65.80EUR)  진짜 30-40분 지나도 안나와서 물어봤더니 곧 나올거라고.. 이 동네가 다 난리가 난 모양. 스테이크 슈니첼 전부 맛있었다. 여기선 너무 피곤해서 다시 우버를 불러서 호텔로 컴백. 내일이 베를린 마지막 날! 

 

마레도 스테이크 슈니첼
흔들리는 조명아래
신이난 어린이